“리스트 규명 불가” 미궁으로 돌아간 장자연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고(故) 장자연씨 사망의혹 사건 가운데 성폭력과 부실수사 등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 등으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며 재수사권고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국 장씨 소속사 김모 대표가 명예훼손 사건에서 위증한 혐의에 대해서만 수사개시를 권고해 ‘반쪽짜리’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3개월간 이뤄진 조사단의 폭 넓은 조사를 통해 사회유력층 인사들에 대한 성폭력 및 수사외압에 대한 검찰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건을 둘러싼 핵심 의혹은 결국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20일 과거사위는 장씨 사망의혹 사건에 대한 심의결과를 발표하면서 “현시점에서 수사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단순 강간·강제추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완성됐으므로)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의 혐의가 인정되어야 한다”며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기획사 대표가 소속 연기자를 개인적인 술접대에 이용하고, 강압적으로 술접대를 강요한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결국 과거사위가 이번 발표에서 재수사를 권고한 것은 김 대표가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에서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거짓증언을 했다는 위증 혐의뿐이다. 김 대표는 2012년과 2013년 장씨 사건 관련 재판에서 소속 연예인을 폭행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으나, 과거사위는 이런 진술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다만 이날 발표에서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미진했던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나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장씨의 수첩과 다이어리, 명함 등 증거물 수집을 누락했다. 압수수색 자체가 57분에 그쳤고 장씨가 사용했던 침대 이외 다른 공간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뤄지지 않는 등 압수수색은 매우 허술하게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장씨가 사용했던 휴대전화 3대의 통화 내역 원본 등 주요 원본 자료가 기록에서 누락된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수사기록 일부가 당연히 보존됐어야 할 통화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수첩 복사본 등이 모두 기록에 누락된 것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이나 검사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이례적”이라며 “의도적인 증거은폐까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이날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 보존, 수사기관 종사자의 증거은폐 행위에 대한 법 왜곡 죄 입법 추진 등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또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의혹이 집중됐던 가해 남성들의 이름을 목록화했다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 여부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즉 접대 요구자 명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실제 문건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은 장씨가 2009년 3월 기업인과 유력 언론사 관계자,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에게 성 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당시 성 접대 등을 받았다고 알려진 유력 언론인 3명의 이름이 올랐지만 수사기관이 당시 장씨의 소속사 김모 대표만 처벌하자 진상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조선일보 일가 등 사회유력층 인사들과 관련한 수사의 핵심은 김 대표로부터 장씨가 술접대 등 강요를 받았는지였다. 강요방조 등 혐의를 이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김 대표의 강요가 우선적으로 입증돼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4월 과거사위는 술접대 등 강요가 실제 있었는지와 부실수사 및 외압 의혹 등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이 사건을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고, 같은 해 7월 조사단에 본조사를 권고했다. 조사단도 지난 13일 법무부에서 ‘장자연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최종 보고를 진행하면서 김 대표가 술접대를 강요한 여러 정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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